<바이칼(Baikal)호수>

여러 민족신화의 무대. 시베리아의 진주. 몽골인들에게 바다로 불리는 세계최대의 담호수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깊고(약 1673m), 깨끗하며, 가장 많은 담수량을 자랑하는 호수이다.
울란바타르에서 국제선으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시베리아의 중심도시 이르쿠츠크(Irkutsk)에서 1시간 자동차로 가면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다.

호수의 길이는 640km, 폭은 가장 넓은 곳이 80km, 가장 좁은 곳이 27km 이고 이 호수로 유입되는 강은 336개인데 바이칼 호수에서 나가는 강은 앙가르(Angar) 강이 유일하다. 몽골인들이 어머니의 바다라며 신성시하는 곳이나 재정러시아의 통치에 있을 때 몽골의 앙이 러시아에 헌납을 한 비운의 땅이기도 하다. 바이칼호수의 다양한 물고기의 훈제를 맛볼 수 있고, 러시아식 사우나와, 유람선을 이용해 호수를 관람할 수도 있다.

<딸지 목조건축 박물관>
1969년에 개관하였으며, 우리나라의 민속박물관식으로 드넓은 초원과 뒤편으로는 앙가라(Angar)강이 흐르고 있어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18세기 러시아 사람들이 거주하던 약 30동의 가옥, 학교, 성당 등의 건물과 기념품 등을 파는 상인들이 많다.


<알혼섬>

바이칼 호수가 시베리아의 푸른 심장이라면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알혼은 ‘나무가 드문’, ‘나무가 조금 있는’ 이라는 뜻이다. 바이칼의 27개 크고 작은 섬들 중 가장 큼 섬이다.

<제까브리스트 박물관>
제까브리스트는 ‘12월 당원’ 이라는 뜻이다. 난의 주모자로 간주되어 시베리아에서 동토로 유배된 베초코이가 1845년에서 1856년까지 거주하였던 집으로 현재는 당시 그대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즈나멘스키수도원>
1762년에 건설된 수도원으로 돔은 황금색 테두리에 여러가지 상화로 되어있고, 현재 수녀원이기에 여성 성직자만 근무한다.
수녀원 건물 안에는 화려한 예수상을 비롯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성가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져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끼로프광장>
이르쿠츠크(Irkutsk)의 중앙공원은 낮과 저녁을 불문하고 휴식을 취하려는 많은 시민들로 항상 활기차다.
근처에는 아름다운 교회와 호텔, 카페, 정원들이 있다. 밤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카페에서 춤과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바이칼 생태박물관>

2,500만 년의 바이칼 호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바이칼호수의 나이, 깊이, 길이 등 도표를 이용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각종 동,식물의 표본을 비롯한 바이칼호수 안내 비디오도 볼 수 있다.


<이르쿠츠크(Ifkutsk)>

이르쿠츠크는 바이칼호수에서 서쪽으로 65km 떨어진 앙가르 강을 끼고 있는 이르쿠츠크는 자연발생적 도시이기 때문에 시베리아 도시들 중 유일하게 35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의 대부분 도시들이 공산주의 하에서 시베리아 자원개발 및 산업개발을 목적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매우 경직된 느낌을 주지만 이와 달리 이르쿠츠크에는 역사가 오래된 성당 및 건물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지정학적 위치상 17세기 말부터 중국과 몽골로 통하는 무역으로 부상했으며, 바이칼호수의 영향으로 중앙시베리아임에도 호안에 위치해 찬바람이 적고 기온이 온순한 편으로 시베리아 도시보다 따뜻한 기후이다.

<이르쿠츠크 & 바이칼 안내>

"시베리아의 파리 -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는 모스크바에서 5,191㎞거리에 있다. 바이칼 호반에 있고 호반을 따라가는 구간도 있다.
여기서 하차하여 관광하는 경우도 있다. 타이제토는 모스크바에서 4,522㎞ 거리이다. 침엽수림과 습지가 교차하여 펼쳐지는 가운데를 가로질러가면 밤 철도의 시점인 이 곳에 도착한다.
* 시베리아의 중심지 역활
이르크츠크는 모스크바로부터 약 5,000km, 블라디보스톡으로부터 약 4,000km 거리의 남동시베리아에 위치한 도시이다. 한국과의 시차는 없고 모스크바와는 5시간, 블라디보스톡과는 3시간 차이가 난다.


러시아 국토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시베리아의 교통, 문화, 무역, 교육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동시베리아의 수도라고 불리었다. 노보시비리스크가 생기기 전에는 이르크츠크가 시베리아의 중심도시였다.
제정러시아 시절 알라스카가 러시아 영토일 때 이르크츠크 주의 영토가 극동은 물론 알라스카까지 포함됐었다. 이 시절 이르크츠크 주지사의 힘은 막강하였다. 지정학적으로 몽고, 중국이 인접해 있어 국경무역이 이루어지고, 또한 한국, 일본 등과 무역하는데 좋은 위치이다.

이르크츠크는 시베리아 혹한의 기후에서도 겨울에 다른 시베리아 지역에 비해 비교적 덜 춥다.
바이칼 호수 호안에 위치해 찬바람이 적고 기온이 온순한 편이다. 그래도 한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 많은 여행객들이 여행을 시작하는 5월에는 밤에는 영상 2-3도 낮에는 18도정도 된다. 한 여름에는 백야 현상으로 밤 11시가 되어야 어두워지고 아침 5시면 벌써 동이 튼다. 한여름 기온은 영상 30도정도이나. 한국에서처럼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건조한 기후로 그늘 또는 건물 안에 있으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이르크츠크 주 인구는 약 250만명, 이르크츠크 시 인구는 약 70만명 정도이다. 다른 시베리아 지역에서 이곳으로 공부하러 오는 유학생이 약 5만명 정도 되어 유동인구까지 대략 8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사실 시베리아에 있는 도시들 중 이르크츠크 만큼 아름답고 전원적인 도시도 드물다. 시베리아 대부분의 도시들은 공산주의하에서 시베리아 자원 개발 및 산업개발을 목적으로 건설되어 매우 삭막하다. 그러나 이르크츠크는 자연 발생적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시베리아 도시들 중 유일하게 35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부랴트라는 동양계 소수민족이 살았었는데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을 담당한 까쟈크라는 사람들에 의해 1961년부터 이곳에 러시아인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시베리아에 살면서도 유럽의 문화수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데카브리스트들의 영향이 컸다. 데카브리스트들은 프.러전쟁에 참전해 나폴레옹 군대를 추격하여 프랑스까지 진격한 러시아 젊은 장교들이 제정러시아 황실의 부패에 대항해 군사쿠테타를 일으킨 100여명의 장교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12월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해서 러시아말로 데카브리스트(12월)라고 부른다. 이들 중 주모자 5명은 교수형에 다른 사람들은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는데 이들 중 이름 있는 귀족장교들이 이르크츠크로 유형을 오게 되었고, 이들이 이곳에서 얼마간 활동이 보장된 생활을 하면서 여기에 러시아 귀족문화를 꽃 피우고 유럽수준의 문화를 소개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도 이들의 덕분에 이르크츠크에 세워진 연극 극장, 오페라 공연장, 건축물 등이 있고 시에서는 이 유산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또 한가지 이들과 관련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데카브리스트들의 부인들이다. 귀족청년들의 부인들은 당시 황실로부터 국가에 반역한 남편을 버리고 귀족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재가를 가든지, 아니면 귀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시베리아 유형을 가든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을 받았다.
그런데 데카브리스트들의 부인들은 자기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 유형을 떠났다. 당시 시베리아 유형은 아무 교통수단이 없는 북풍한설의 얼음길을 걸어서 1년 넘게 가야했고, 영하 30-40도 혹은 50도의 살인적 추위의 유형길을 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끝까지 혁명가 아내의 길을 따른 것이다. 물론 그들 중 도중에 죽은 사람도 있었고(자녀들도 데리고 오면서) 이곳에 도착해 남편을 만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묘가 현재 이르크츠크 즈나멘스카야 사원내에 있다.

* 물가는 모스크바와 비슷
이르크츠크는 러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중의 하나이며 모스크바, 뻬쩨르부르그 다음으로 부동산 값이 비싼 곳이다. 러시아 대부분의 도시들이 석회수가 묻어난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르크츠크는 천혜의 호수 바이칼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시원한 식수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엄청난 용량의 수력발전소가 있어 일년 가정용 전기료가 많아야 30달러 정도로 러시아내에서 전기료가 가장 싸다.

러시아의 사회적 혼란한 상황은 이곳도 마찬가지이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거의 100%에 달하는 이혼율(99년 이르크츠크시 결혼한 수와 이혼한 수가 거의 비슷)로 인한 가정파괴가 주는 사회문제이다.
가정이 더 이상 쉼터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청소년들이 범죄, 마약, 매춘 등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어 가고 있다. 강제이주 당한 우리 한인 후손들이 약 700여명이 살고 있다. 그들은 근면, 성실한 성품을 이어받은 덕택으로 대부분 중류생활을 하고 있다.

동 시베리아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인구 약 65만명이다. 바이칼 호수의 서쪽 65㎞, 안가라 강과 이르쿠츠크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는 아름다운 시베리아의 오래된 도시이다. 바이칼 호수 관광의 기점이고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철도의 중단점이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 도시의 풍경은 비경의 땅이 있다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가로수로 꾸며진 마르크스의 거리를 중심으로 벽돌건물이 이어진다. 골목으로 가면 창이 아름다운 목조주택이 줄지어 있으며 러시아정교 수도원이 몇군데 있어서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 도시는 데카브리스트 의 난으로 폭동을 일으킨 귀족들의 유배지였던 역사도 갖고 있다.

1)향토박물관
앙가라 강에서 마르크스 거리로 향하여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건물로 1782년에 설립되었다. 러시아에 표류한 일본인 大黑屋光太夫 일행의 귀국을 실행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락스먼이 이 박물관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가 하여 많은 전시품을 수집하였다.
시베리아 선주민의 무기, 생활일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시베리아 동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그릇, 어린이들의 완구, 민속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 세레호프가 탐험에 사용하였던 짐승가죽으로 만든 카누 등이 볼만하다. 1층 표를 파는 장소옆에는 선물상 점이 있고 시베리아에서 산출되는 돌에 그린 인형 등을 팔고 있다. 박물관 앞의 흰 건물은 화이트 하우스라고 불리는데 동 시베리아 총독부가 있었던 장소이다. 현재는 이르쿠츠크 대학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월요일, 화요일은 휴관이다.

2) 테카브리스트 박물관
S. 토르베초코이는 데카브리스트의 당원으로 난의 주모자로 간주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감형되어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 1845년부터 1856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당시 그대로 현재 박물관이 되었다. 부인인 에카테리나 도르 베츠카야 공작부인의 묘는 즈나멘스크 사원에 있다.
데카브리스트 관에는 보르콘스키의 관도 있다. 관람시간은 10:0에서 18:00까지이고 월요일은 휴 관이다.

"데카브리스트의 후예들"
이르쿠츠크는 모피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시베리아와는 달리 고귀한 정신과 지성을 갖추고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의 정신적 뿌리는 짜르 전제에 맞선 러시아 귀족혁명당 데카브리스트에 있다.
12월을 뜻하는 데카브리스트 당원들은 짜르 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곧 실패해서 여기로 유형당하게 된다. 반역에 가담한 죄인들은 20㎏이나 되는 족쇄를 차고 1826년 1월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 시베리아로 떠났다. 또한 이들을 따라 데카브리스트의 아내 11명이 남편을 따라갔다.
최근 개봉된 '시베리아의 사랑'에는 이러한 정경이 잘나타나고 있다. 유형지에서 당시 러시아에서 최고의 엘리트로 교양과 학식을 갖춘 이들 귀족 당원들은 주민을 일깨워 이 지역의 지적 토양을 가꾸고 극장 같은 예술공연과 문화시설을 갖추는 데도 일조했다. 데카브리스트가 살았던 집들은 오늘날 새로 단장돼 고난의 옛 자취를 증언하고 있다. 제르진스코이 거리 한 쪽에 있는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은 수수한 목조건물이다.
황실 근위대 장교였던 트루베츠코이(1790∼1860)가 1856년까지 유배 생활하며 지낸 집이다. 그는 1826년부터 30년간의 유형기간중 절반을 이르쿠츠크에서 보냈고, 그의 아내 에카테리나 트루베츠카야는 1854년 여기서 숨진 뒤 우샤코프카 지역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묻혔다.
수도원 묘지에는 관광객 외에도 신혼부부들이 주말이면 많이 찾아 꽃다발을 놓고 간다.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처럼 고결한 헌신과 사랑의 실천을 다짐하면서. 한국사에 있어 이르쿠츠크는 처음으로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이 결성된 도시이다. 당시 조직이 결성된 곳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인데, 지금은 이르쿠츠크 대학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록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지 못해 비록 조선공산당을 대표할 자격은 얻지 못했지만, 한국 사회주의운동사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

3) 즈나멘스키 수도원
브나코프카 강을 건넌 곳에 있다. 1762년에 건설되어 현재도 쓰이고 있는 교회로 일요일에는 미사도 행해지고 있다. 사원의 정원에는 데카브리스트의 난 후에 시베리아에 유배된 데카브리스트들과 그 가족의 묘가 있다.
또 러 시아의 콜롬부스라고 불리는 제리포프의 묘가 있다. 항해사이고 상인이었던 제리포프는 북 아메리카, 아루잔 열도에 최초의 러시아 거주지역을 조성하 였다.

4) 시베리아 철도 건설기념 오벨리스크
앙가라 강에 면한 가가린 거리에 있다. 주변은 앙가라 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공원으로 되어 있다. 1891년에 기공된 시베리아 철도를 이르쿠츠크 에서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으로 최초의 열차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1898년 8월의 일이었다. 오벨리스크에는 시베리아 개척에 공헌한 3명의 영웅인 엘마크, 스페란스키,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5) 미술관
석조건물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1870년대의 이르쿠츠크 시장이었던 스카 초프의 회화 수집품을 기초로 창설되었다. 시베리아 각파의 이콘, 러시아 회화, 중국의 도자기나 회화의 수집으로도 유명하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화요일은 휴관이다.

6) 드라마극장
향토 박물관 옆에 있다. 이 일대는 밤이 되면 연극을 관람하러 온 시민들로 떠들석하다. 극장안에는 노동 스타디움이 있는데 겨울에는 실외 스케이 트장이 된다.

7) 영화관
마르크스 거리에는 몇 개의 영화관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야간에는 어디나 성황을 이루며 다음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로비에서 쉬고 있다. 내부장식이 화려하고 조각도 꼼꼼하게 되어 있다.

"바이칼"
바이칼은 우리 지구상에 존재하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바이칼 호수는 나이, 수심, 자원들, 민물의 함유량과 다양한 유기생물들에 있어 탁월하며 세상에서 바이칼 호수와 비교할 수 있는 호수는 없다. 바이칼은 어떤 사람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경이로움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바이칼 호수와 관련하여 수많은 전설과 민요 설화들이 있으며 이들은 부분적으로 바이칼과 그의 자연경관 호수 주위에 살았던 종족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바이칼은 "거룩한 바다", "시베리아의 진주", "멋진, 하얀 머리의, 위협적인 바이칼"로 불리는데 이는 모두 다 경이로운 힘을 가진 바이칼 앞에 실제적인 존경과 감탄과 두려움을 나타내주는 말들이다. 바이칼은 시베리아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636km, 폭은 27-80km사이이다. 총 해안의 길이는 2000km이며 바이칼 해안은 수많은 갑들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갑과 갑 사이는 만들이 펼쳐져있다. 가장 큰 바이칼의 만은 발구진(725 평방km), 치븨르쿠이스크(270 평방km)와 쁘로발 (197평방 km)이다.

그리고 바이칼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31500 평방 km로 이는 세계 호수들 중에 8번째 규모이다. 바이칼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호수 중에 하나로 학자들은 바이칼의 나이를 2천5백만 년이나 3천만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학자들은 바이칼을 노년기로 보고 있지 않는데 이는 아직도 해마다 2cm씩 해안이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은 지금도 이런 속도로 변화되고 있다. 바이칼은 사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바이칼의 서쪽과 북서 해안을 따라서는 쁘리모르스크와 발구진 산맥이, 남동쪽과 동쪽 해안을 따라서는 하마르-다반, 울란-부르가싀, 발구진, 상위 안가르스크와 데륜-우란스크 산맥들이 둘러싸고 있다. 바이칼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민물을 저장하고 있는데 그 물의 양은 23000입방 km이며 이는 카스피 해 다음으로 많은 규모이며 이는 세계 민물양의 1/5에 해당하는 것이다.

해마다 60입방 km의 다른 호수와 비교할 수 없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바이칼에 유입 유출되며 이런 놀라운 물의 축복은 또한 여러 가지의 동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다. 물의 깨끗함은 물의 투명성에 달려있다. 바이칼은 단지 이례적인 물의 깨끗함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호수 중에 가장 물의 투명도가 높다. 얼음에서 막 깨어난 봄에 바이칼 물의 투명도를 조사해보면 투명도가 40m까지 이른다. 이는 다른 많은 호수들보다 투명도가 10배가 높은 수치이다. 바이칼로 흘러들어오는 강들과 호수를 포함한 물이 차지하는 총 면적은 590000평방 km이다. 호수로는 336개의 강이 흘러들며 그중에 가장 큰 강은 세렌가 강이다. 그리고 바이칼에서 흘러나가는 강은 안가라강 하나이다. 바이칼에는 22개의 섬이 있으며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섬은 알혼섬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놀랍고 아름다운 섬이 4개의 군도로 이루어진 우쉬칸 섬이다. 바이칼 호의 기후는 해양성 기후를 띄고 있어 주변 지역과 다른 기온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겨울에는 주위보다 좀 더 따듯하며 여름에는 시원하다. 바이칼 호에서 68km떨어진 이르쿠츠크 도시와 비교할 때 기온차가 8 - 10oC 이다.6월 이르쿠츠크 +25에서 +30oC 바이칼+15에서 +18oC12월 이르쿠츠크 -20에서 -25oC바이칼 -12에서 -15oC 바이칼 주위는 일조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예로 "발쇼에 골라우스트나에"라는 마을은 햇볕이 있는 시간이 2524시간으로 러시아에서 일조량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호수의 물 기온은 여름철에 만의 상층부에 있는 물을 살펴볼 때 +16℃이다. 가장 따뜻한 물은 무호르, 치븨르스크와 바솔스크 만이다. 가장 얇은 곳에서 이곳의 온도는 8월에 +23℃까지이다.
바이칼호는 해마다 얼며 10월 말이면 얇은 만이 얼기 시작하며 6월 9-14일 경에는 호수 북쪽의 늦게 녹는 얼음들도 모두 녹는다. 평균 바이칼 호의 얼음 두께는 70cm이며 많게는 113cm까지이다 바이칼은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다. 지구에서 이런 다양한 동식물을 함유한 바이칼과 비교할 수 있는 민물 지대는 없다. 바이칼의 동식물중에 2/3은 이곳에서만 서식되는 고유 동식물이다.

그 중에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진 것들은 몸의 30%이상이 기름으로 구성된 갈라만갸, 바이칼 오물, 바이칼 바다사자, 그리고 바이칼을 깨끗하게 해주어 청소부라는 이름을 가진 라츠크들이다. 바이칼에서 휴양과 여행을 위해 해마나 러시아와 해외 각지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바이칼의 광대함 에메랄드처럼 깨끗한 물, 다양한 만과 모래사장, 빠른 강들, 폭포, 광천수, 광대하게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숲과 산지들,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와 빼어난 절경을 접하며 바이칼과에 대한 아름다움 기억을 간직한다.

보통 여행객들이 찾는 곳은 바이칼의 따뜻한 만들이며 여름과 겨울에는 많은 낚시꾼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또한 돛단배나 증기선을 타고 바이칼을 두루 돌며 여행을 하는가 하면 바이칼 횡단 열차를 타고 바이칼을 끼고 중간 중간에 아름답게 만들어진 터널과 돌 갤러리들을 지나며 기차에 서로 마주앉아 정다운 친구와 연인들과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며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목조 민속 박물관"딸쯰", 바이칼 박물관등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바이칼은 그 광대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보고 체험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비밀과 수수께끼를 자아내게 하였다.
바이칼은 접하면 접할수록 더한 새로움과 놀라움을 발견하게 되며 저절로 이는 신이 준 값진 보화임을 알게 된다. 바이칼 앞에 설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울란우데 -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는 부랴트 공화국의 행정과 정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또한 시베리아의 고도 중에 하나요 비교적 큰 도시이다. 울란우데는 경치가 수려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 남쪽으로는 침엽수림이 우거진 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도시의 서쪽으로는 이볼긴스크 계곡이 뻗어있다. 도시로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세렌가 강과 빠른 유속의 우다 강이 흐른다. 도시의 형성과 발전은 부랴트가 러연방에 속하면서 자연적으로 발생된 부랴트와 러시아 민족의 공동체적인 삶과 생활이 빚어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역사적인 여정은 시베리아에 부를 창조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울란우데의 역사도 보통 다른 시베리아의 고도들이 발생된 경위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처음 시작은 이곳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겨울 캠프를 지으면서이다. 1666년 러시아의 코자크 기병대들이 높은 절벽을 형성하고 있는 우다의 강어귀에 작은 목조 집을 건축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우딘스크 코자크인의 겨울 캠프”로 불렀으며 이 캠프는 그 당시 모피와 짐승들로 세금을 받는 “야사크”를 받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다음에 이 겨울 캠프는 요새로 다시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캠프는 러시아가 중국과 몽고와 접하는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장차 무역 요충지가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우딘스크 겨울 캠프가 갖는 지리적 조건을 고려하여 이곳에 군사 요충지로서 요새를 건설하였다. 1689년에 요새를 완성하였으며 이 요새를 “상우딘스크”라 불렀다.

그리고 1690년에 “상우딘스크”요새는 도시로 승격되었다. “상우딘스크”는 1680년부터 행정 관계상 이르쿠츠크의 관할 영역에 속하였다. 도시는 러시아가 중국과 몽고와 교역할 수 있는 무역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동시베리아에서 러시아의 주 무역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상우딘스크”에 1780년부터 시장이 서기 시작했으며 1791-1856년에는 숙박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시의 산업 발전은 시베리아 철도의 건설과 관련을 맺고 있다. 철도 건설은 1892부터 1905년 까지 13년간 진행되었으며 1899년 8월 15일 처음으로 이곳에 철도가 입성하였다.
시베리아 철도의 완성은 “상우딘스크”가 전 러시아와 교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와 함께 도시 인구도 늘어나 1913년에는 도시 인구가 1만 3천명에 이르렀다. 현재 울란우데는 부랴트 공화국의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부랴트의 역사"
부랴트인의 인종과 종족은 고대와 중세까지는 몽고 종족과 함께 단일 민족을 이루고 있다. 즉 고대와 중세에 있어서의 부랴트인의 역사는 완전히 단일 몽고의 부분에 속하였다.
부랴트 인종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된 책은 "비밀 이야기(1240년)"이며, 그곳에 다음과 같은 종족들이 언급되어 있다. 부르구틔, 호리-투마틔, 불라가치늬, 케레무치늬, 그리고 뒤늦게 부랴트 민족에 합류된 몇 종족이 있다. 고대 부랴트 종족이 살았던 지역은 몽고 영역의 북쪽 지역의 변방이었으며, 그곳은 "부르구드쥔-투쿰"으로 불렸으며 바이칼을 옆에 끼고 있는 지역이었다.

징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몽고를 다스리던 시대에는 부랴트는 대 몽고의 권력으로 유입되었다.
17세기 중엽에는 부랴트는 러시아로 통합되었으며, 이 때 통합된 영역은 바이칼 동쪽에서부터 몽고의 접경지역까지 이다. 러시아의 통치하에서 각기 다른 여러 그룹과 종족의 통합되는 과정이 시작되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행정과 정치, 러시아 경제 행정 시스템으로 변환, 러시아 민족의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었다.

그래서 결국 19세기 말에는 새로운 형태를 갖춘 새로운 공동체의 부랴트 종족을 형성하였다.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에는 1921년에 "부랴트-몽고" 자치주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몇 번의 변화를 거치면서 1992년에는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 부랴트 공화국이 설립되었다.

"부랴트인의 종교"
부랴트는 시베리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쪽 모두 바이칼을 끼고 있다. 부랴트 문화는 고대로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민족들의 양식과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
최근 3세기에 걸쳐서는 이곳은 샤머니즘, 티베트 불교, 러시아 정교회가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샤머니즘"
부랴트인의 전통적인 종교는 샤머니즘이다. 부랴트의 샤머니즘은 순전한 감정적인 것을 표현하는 여러 의식과 행위가 많으며 이런 행위들이 믿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샤만교의 주문은 여러 가지 의식을 조화시킨 것이다. 즉 이 의식에는 말, 음악, 노래, 그림(안곤), 향, 술, 빛, 불등이 이용된다.
그 중에 샤만이 사용하는 말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노래, 기도문을 읽는 것, 레치타티보(서창), 부벤을 두드리는 것, 열 개의 철로 된 브렌차니에, 옷에단 뼈로 만든 배병, 춤, 최면술이 군중에게 영향을 끼친다. 부랴트 샤머니스트들이 바치는 제사 물은 여러 종류가 있다.
- 맥주나 보드카를 따르고, 흩뿌리는 것
- 음식, 돈, 담배를 바치는 것
- 여러 색깔의 헝겊 조각을 의식을 할 때 쓰는 도구, 안곤
   (나무, 철 등에 사람이나 동물의 모양을 한 것으로 영이 깃들게 하기 위한 것),
   신성한 장소, 물이 나오는 곳에 매다는 것.
- 불을 피우는 것 - 향을 피우는 것
- 산짐승을 바치는 것
- 짐승을 잡은 후 바치는 것.
샤머니즘이 다른 종교와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별히 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공공적인 장소나 모이는 장소는 자연 그대로로 산의 정상이나 산기슭, 강가, 시냇가, 평범하지 않은 나무, 바위 등이다. 제사 지내는 곳은 계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보통 신성시 되는 장소로 여겨지는 곳은 유목민의 천막 부락이나 종족의 발생지들이다. 각 장소에는 그 지역의 주인인 에쥐나 영이 있다고 말한다.
남녀 샤만은 샤머니스드과 자연의 세계를 초월하는 힘을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한다고 말하며 샤만은 하늘과 신에 의한 선택된 사람으로 여긴다. 그래서 샤만이 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배경이 있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샤만의 혈통이거나 그 뿌리가 샤만과 관련이 있어야 된다.

일상생활의 외형에서 샤만들이 일반인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머리 뒤로 길게 땋아 늘인 머리, 막대기나 철로 된 지팡이, 리본이 있는 모자 등이다. 하늘에는 하얀(선), 검은(악)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이 중에 하얀 신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 샤만들은 흰 담비 털로 만든 옷을 입으며 하얀 말을 타고 다닌다.

샤만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예배를 섬기는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추가로 함축된 의미는 점의 달인, 예언, 마술사, 시인, 배우, 계보, 의식, 전통의 전문가, 구술 민족의식을 만들고 행하는 전문가, 일반 규율의 감독자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샤만 의식은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행해지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
부랴트에서 정교회 역사는 250년이 넘는다. 처음 이곳에 정교회를 세운 사람은 니로 이사코비츠이다.
1682년에 뜨로이쯔 교회가 세워졌으며 다음으로 이곳에서 적극적 정교회 보급을 위해 선교임무를 띈 대사원이 세워졌다. 1727년에 이르쿠츠크에 주교가 임명되었으며 그는 부랴트, 야크트와 에벤크인들을 전도할 사명을 가졌다. 19세기 중반에는 이런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하였으며, 이 때 성경을 비롯하여 20여권 이상의 정교회 관련 책자를 번역하였다.
20세기 초에 부랴트 정교회 신자는 85,000 명으로 그 당시 부랴트 인구의 1/3을 차지하였었다.

"불교"
러시아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전에 자바이칼 지역에는 이미 불교 신상과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18세기 초에 이런 비슷한 곳이 11개 있었으며 라마승들도 150명이 있었다. 수가 증가함에 따라 부랴트의 젊은이들은 불교의 중심지인 몽고나 티베트로 가서 교육을 받았다. 1741년 여제 엘리자벳 뻬뜨로브나에 의해 라마교가 불교의 한 부류로서 러시아의 정식 종교로 채택되었으며 세금과 의무에서 제외된 150명의 라마승들이 생겨났다. 엘리자벳의 개혁후로 라마교의 권위가 많이 상승 되었으며 이와 함께 부랴트의 첫 사원 "땀친스크"가 세워졌다. 19세기 하반기부터 20세기 초에 부랴트의 라마교가 번성하였으며 이 때 사원에서는 학교, 의료시설, 인쇄시설, 다양한 예술, 불교학, 학문, 번역 출판일, 소설등과 관련된 일이 행해졌다.
부랴트에 퍼진 라마교는 3대 불교의 흐름 중에 하나이며 의식이 복잡하다. 의식 중에 가장 극장 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예배 중에 행하는 춤(짬,후랄)이다. 짬은 티베트 어로 참이며 춤이라는 뜻이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무언극과 춤은 불교의 신비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티베트에서 연유하였다.

부랴트에서 짬은 수호신이라는 의미로 자주 받아들여지며, 이는 성난 육체로부터 불교의 믿음을 보호해 주는 자로의 의미가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다짠에는 티베트 어로 거룩한 춤 의식을 안내하는 특별 안내서가 있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거룩한 라마승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예배 때의 모든 춤 의식, 무언극을 안내하고 만들기도 하였다. 큰 절에는 보통 화가들이 있어서 신들, 사람, 동물, 새들의 가면을 만들어 짬(춤)을 행할 때 사용되었다. 또한 옷을 만드는 전문가가 있어 여러 모양의 난해한 등장인물의 옷을 제작하였다. 장엄한 예배 짬(춤)-후랄 다크싀트는 1년에 한번 7월 초에 행하는데 이 때 많은 신자들과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1914년 부랴트에 라마승은 16,000명, 48개의 사원이 있었으며 라마교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이로 인하여 문서의 보급, 학문의 발달, 문학, 예술, 건축, 공예의 발달을 가져왔다고 한다. 불교는 생활의 모형, 민족 정서, 예절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1925년 이후 소련에서 종교와의 충돌을 시작한 이후 종교 활동은 계속해서 줄어들었으며, 모든 사원들은 문을 닫고 물건들은 징집되었다. 이런 와중에 수천 개의 문화재들이 파괴되었으며 결국 30년대 후반에는 불교 사원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이후에 불교 사원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1946년에 공식적으로 "이발민스크 다짠"이 세워졌다. 부랴트에서 실제적인 불교의 재건은 80년대 하반기에 시작되었다. 이때 옛 사원의 재건, 새 사원 설립, 전문가 양성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다. 1995년에는 16개의 사원이 활동하였다.

"관람하고 방문할 수 있는 곳. 이르쿠츠크 코스"
이르쿠츠크의 박물관들
이르쿠츠크 지역학박물관.
개관시간: 10시부터 18시까지. 휴일-일요일.
박물관은 178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박물관은 시베리아 첫 번째 천문대의 둥근 지붕으로 꾸며진 동 장식이 있는 모리타니아식으로 지어진 건물에 있습니다. 박물관에 300종의 진열품 중에서 250종의 진품입니다.
이 진열은 선사시대부터의 시베리아생활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원시적인 도구와 생활용품이 전시되어있습니다. 독특한 시베리아 큰 강물 수집, 새와 짐승의 박제, 표본집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고대의 수기, 지리학과 지질학 학술탐험의 보고서가 전시되고 모든 시대의 옷, 자수, 중국, 몽고, 티벳에서 가져온 독특한 진열품이 있습니다.

나무 건축과 민속박물관"딸찌"
개관시간: 매일 10시부터 17시까지
러시아의 대통령은 건축술과 민속박물관"딸츠"를 러시아 민족의 높은 전신과 문화재의 대상이라고 불렀습니다. 1969년에 설립된 박물관은 바이칼대로에서 47k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67헥타르 면적의 보안림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건축기념물 40종이며 높은 문화재전시품 8000종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와 부랴뜨의 건축과 민속기념들은 시베리아 민족의 다양한 생활방식을 보여줍니다.
일리므스키이요새의 스파스키예대문(1667년)과 지금도 예배를 보는 카잔스카야 작은 예배당은(1679년) 제일 귀중한 건축기념물입니다.
이 건축기념물들은 다른 목조건축물과 함께 물에 잠긴 우스티-일림스키이지역에서 옮겨졌습니다. 토박이 시베리아인의 생활방식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앙가라강 수원
바이칼호에서 흘러나가는 유일한 앙가라강의 길이는 1779km입니다. 앙가라강수원은(넓이- 863m, 깊이- 4,8m, 흐름속도 5,1kmp/h)가장 혹독한 시베리아 추위 때에도 결코 얼지 않습니다. 강 중앙에 머리처럼 보이는 바위가 솟아 있습니다. 정부는 이 바위를 옛날부터 지방전설에서 얘기해오는 기념물로써 보호합니다.
시베리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전설은 바이칼은 자기 예쁜 딸 앙가라강을 무사 이르쿠트에게(앙가라강 지류중하나) 시집보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앙가라강은 다른 무사 예니세이와 사랑에 빠져서 그에게 도망갔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딸 뒤를 따라서 큰 바위(샤만돌)를 딸에게 던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물새들을 위한 앙가라강 수원에 월동장소가 생겼습니다. 샤만돌 건너편 호수 변에 음식과 기념품을 파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바이칼박물관
개관시간: 여름 9시부터 19시까지; 겨울 9시부터 17시까지
박물관은 1928년에 리스트비양카 부락에서 호수학 연구소개소와 동시에 설립되었습니다. 매년 호수학박물관에 30000명이 방문합니다. 독특한 박람회가 바이칼의 기원, 역사, 동물상, 식물상, 바이칼호에 인접한 지역의 기후, 지질구조에 대해서 얘기 히 붑니다. 여기에 새와 짐승의 박제, 광물의 견본이 있습니다.
바이칼호수의 모형들은 호수의 역사, 호수변선과 호수밑바닥의 특별함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바이칼의 물고기가(오물, 골로먕카, 하리우스, 용철갑상어, 따이몐) 진열되어 있습니다. 바이칼호수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들은 호수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잠수정 "Pisces"의 도움으로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을 비디오 촬영했던 독특한 장면이 있는 20분의 영화 "지구의 우물"상영이 박물관의 견학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토브카 산책, 성 니콜스키 교회 방문
전설에 따르면, 시베이아 상인 셰례브랴코프가 폭풍우를 만나 구조의 기도를 모든 여행자의 보호자 성 니콜라이에게 빌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 그는 감사의 뜻으로 1846년에 교외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건설이 끝나기 전에 상인은 죽고 그의 아내가 대신 건설을 끝냈습니다. 1950년에 교회는 수리되었습니다. 이 교회에 다른 교회에서 많은 성상이 선물되었습니다. 그 성상 중에서 몇몇 성상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행준비물 및 기상정보>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최고기온 -20 -15 -4 5 12 17 18 17 11 5 -6 -16
최저기온 -21 -20 -14 -4 5 12 17 12 5 -4 -15 -20
평균기온 -21 -18 -9 1 9 15 17 15 8 1 -11 -19

여행준비물 및 주의사항
  여름(5~9월 사이) 겨울(10~4월)
복장 낮에는 덮고, 아침 저녁으론 싸늘한 일교차가 심한 날씨로 여름옷과, 따뜻한 옷(점퍼, 쉐터등)을 같이 준비해야 합니다. 눈오고 추운 계절입니다.
방한복을 단단히 준비 하세요.
준비물 1. 썬그라스, 썬크림, 세면도구, 모자, 상비약
2. 기호에 따라(술, 담배), 양산겸 우산, 헤어 드라이어기(220v/ 한국과 동일)
음식물 개인 밑반찬과, 고추장, 컵라면 및 간식거리를 준비 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시차(몽골) 2007년부터 몽골의 섬머타임 제도가 없어집니다. (한국시간보다 - 1시간/ 한국시간이 12시일때 몽골은 11시 입니다.)
2006년까지는 5월~9월 섬머타임 기간으로 한국과 동일 하였습니다.
시차
(러시아)
바이칼 & 이루쿠츠크 지역은 한국과 동일한 시간으로 시차가 없습니다.
블라디보스톡은  한국보다 2시간 빠릅니다. (+2시간 / 한국이 10시 일때 12시)
주의사항 1. 밤에 개인적인 외출 , 특히 택시를 타고 움직이는 것은 위험 합니다.
2. 고급 호텔 앞, 관광지에서 거지 소년들에게 동정을 베풀지 마십시오.
3. 관광지에서 소매치기를 주의 하세요 특히 시내 중앙시장 근처
4. 숙소에서 잘 때 고성방가, 음주가무는 남에게 피해를 줄수 있습니다.
5. 필요 이상의 팁을 주지 마세요.
6. 한국어를 하는 현지인들이 많으므로 함부로 못들을거라고 현지인을 욕하면 않됩니다.
통화 러시아 루블화 사용 / 사용할 일은 별로 없음
달러를 지참하고 루블화를 환전하여 사용 (US$ 1 = 22~23 루블정도)
팁 호텔 벨보이와 룸메이드 : 1$/1룸, 기타 고마움을 느꼈을시 1$ 혹은 1000원을 주시면 됩니다.
여행자의
마음가짐
1. 한국 혹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시설 및 모든 것이 열악 합니다.
2. 집중적으로 여름에 관광객이 몰리므로 호텔사정이 변화가 심할수 있습니다.
3. 국내선이 기상이나 항공사 사정으로 지연, 취소가 많습니다.  해프닝도 즐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4. 대자연을 즐기는 체험투어로 즐거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